
에너지빈곤 심각도 분석을 통한 국내 에너지빈곤층 식별 연구
Abstract
Rising energy prices and accelerating climate change have intensified the “heat or eat” dilemma faced by low-income households. Traditional binary indicators classify households simply as energy-poor or not energy-poor, but they fail to capture the depth and severity of this deprivation. To address this limitation, this study develops a continuous Energy Poverty Index (EPI) that quantifies poverty severity and the actual livelihood constraints experienced by households. By incorporating a modified Engel coefficient, the EPI reflects how energy burdens crowd out spending on essential needs such as food, housing, and health. Using Statistics Korea household survey data from 1998 to 2022, the empirical analysis demonstrates that the EPI has strong temporal stability and greater targeting precision than conventional indicators. Because it measures severity at the individual household level, the EPI enables severity-weighted subsidy allocation rather than uniform payments. Notably, the index successfully identifies hidden high-risk households that report low nominal energy expenditures but experience extreme and overlapping vulnerabilities that binary measures overlook. These findings support a paradigm shift in energy welfare policy from uniform, undifferentiated payments to severity-based, differential support. By comprehensively capturing how energy burdens compromise essential needs, the EPI offers a practical tool for designing more equitable and climate-resilient energy assistance programs nationwide.
Keywords:
Energy Poverty, Multidimensional Severity Index, Heat or Eat, Targeting Precision, Climate Change Adaptation1. 서론
IPCC 6차 평가보고서(IPCC, 2023)에 따르면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 열대야 등 극한 고온 현상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냉방 에너지 수요 역시 함께 증가하였다. 동계 기온 변동성이 확대되고 극한 한파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취약계층의 난방 에너지 수요와 비용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더불어, 최근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무력 충돌 격화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조시켰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의 연쇄적 발생은 천연가스 및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공급망을 심각하게 교란하며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을 촉발하였다. 국내 전기·가스·유류 등 필수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였고, 이는 구조적인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전환 부문의 탄소가격제 도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에너지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Kim and Cho, 2023; Shim and Lee, 2022). 거시경제적 충격과 기후위기는 소득 수준이 낮고 주거 환경의 단열 성능이 취약한 가구에 치명적인 이중고로 작용하며, 이들을 ‘에너지빈곤(energy poverty)’으로 내몰고 있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치솟는 광열비를 감당하기 위해 취약계층은 결국 식비나 의료비 등 가장 기본적인 필수 생계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처하게 된다. 취약계층 중 고령가구의 경우 낮은 전자기기 보급률 및 에너지 절약 성향 등으로 인해 가구의 총에너지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No, 2014; Shin et al., 2015; Won, 2012; Yoon et al., 2019). Bhattacharya et al. (2003)과 Beatty et al. (2014)은 기온 저하 시기에 저소득층이 늘어난 난방비를 충당하기 위해 필수 영양 섭취를 강제로 줄이는 현상을 실증 분석하며, ‘Heat or Eat’ 딜레마를 분석한 바 있다. 에너지 비용 지출의 증가가 생존을 위한 필수 영양 섭취의 포기로 직결되는 현상은 에너지빈곤이 단순한 요금 부담의 차원을 넘어 가구원의 건강권 및 생존권 문제와 직결되는 중대한 정책 과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후변화 적응 정책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복지는 보편적 요금 보조를 넘어,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 수요가구를 정밀하게 식별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2장에서는 선행연구를 정리하고, 제3장에서는 방법론 및 분석자료를, 제4장에서는 주요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주요 내용을 정리하여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2. 선행연구
국내외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는 제한된 복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실제 에너지빈곤층을 식별하는 에너지빈곤 지표를 개발해 왔다. 에너지빈곤 지표의 효시는 영국의 Boardman (1991)이 제안한 10% 지표(TPR, Ten Percent Rule)로, 소득의 10% 이상을 광열비로 지출하는 가구를 빈곤층으로 식별하며 전 세계적으로 차용되었다. 이후 단순 비율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저소득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효율이 낮은 가구를 포착하는 Hills (2012)의 LIHC (Low Income High Costs) 지표가 도입되었으며, 주거비와 에너지 비용을 제외한 잔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지를 확인하는 Moore (2012)의 최저생계비 기준(MIS, Minimum Income Standard) 지표 등으로 논의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TPR, LIHC, MIS와 같은 지표들은 정책 대상자를 빠르게 식별하는 데 유용하지만, 동일한 빈곤층 내 빈곤 정도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척도들은 주로 물리적 비용의 크기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취하고 있으며, 특정 기준선 초과 여부만을 판별하는 이분법적 식별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분법적 접근하에서는 기준선을 근소하게 상회한 가구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에너지 비용 압박에 시달리는 가구가 동일한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즉, 빈곤층의 규모를 식별하는 정확도 (accuracy)는 일정 수준 확보할 수 있으나, 그 내부에서 어떠한 가구가 더 위태로운 상태인지 서열화할 수 없어 우선순위 기반의 차등적 자원 배분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정된 국가 복지 예산 하에서 빈곤의 강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준선을 초과한 대상자에게 자원을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은 가장 취약한 극빈층을 충분히 지원·보호하지 못한 채 복지 사각지대를 초래한다.
해외 선행연구에서도 에너지빈곤은 단순한 에너지비 부담이나 소득빈곤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에너지 접근성, 소비 수준, 서비스의 질, 지불가능성 등이 결합된 다차원적 문제로 논의되어 왔다. Birol (2007)은 에너지빈곤을 에너지안보 및 지속가능발전과 연결되는 핵심 정책 의제로 제기하였으며, 에너지빈곤 완화가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다. Pachauri et al. (2004)은 인도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 접근성과 에너지 소비량을 결합한 2차원 측정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에너지빈곤이 단순한 소득 부족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였다. Barnes et al. (2011) 역시 방글라데시 농촌 가구 분석에서 에너지빈곤율이 소득빈곤율보다 높게 나타남을 제시하여, 소득빈곤과 에너지빈곤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Bhatia and Angelou (2015)의 Multi-Tier Framework에서도 확인된다. 해당 접근은 전력 연결 여부와 같은 이분법적 지표가 실제 에너지 접근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고, 에너지 서비스의 용량, 지속시간, 품질, 신뢰성, 지불가능성 및 안전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다만 이러한 국제적 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전력 접근성, 기초 에너지서비스 확보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전력망 및 기본 에너지 인프라 접근성은 매우 높기 때문에, 에너지빈곤의 핵심은 물리적 접근성 결여보다는 에너지비 부담이 다른 필수소비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특히 저소득 가구는 난방비 상승에 직면하더라도 총소득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식비·의료비 등 조정 가능한 필수지출을 줄이며 생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Lee and Chang (2026)은 A-TPR(실제 지출), R-TPR(필요 지출), MIS를 교차 적용한 다기준 분석과 로짓 분석을 수행하여 중첩률을 비교하였다. 분석 결과, 필요 에너지지출은 높지만 실제 지출은 낮은 ‘비자발적 과소소비’ 가구가 존재하며, 이는 주거비 부담이 큰 임차 가구에 집중된다는 점은 실제 지출액 기반 지표가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는 취약가구를 배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기존 다차원 에너지빈곤 논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되, 한국적 맥락에서는 에너지 접근성보다 ‘에너지비 부담이 필수 생계비를 얼마나 제약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는 식료품비뿐 아니라 외식비를 포함한 수정 엥겔지수를 심각도 지표의 한 축으로 도입하였다.
최근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노인가구가 전체 가구 중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집에서 직접 조리하는 대신 외식 및 배달 소비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가구들이 증가하였다. 또한 이상기후로 인해 과일·채소와 같은 식재료의 가격이 증가하고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함에 따라 외식비를 포함한 식비가 전체 소득에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식료품 비용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높은 수준으로, 식료품과 같은 필수소비재의 물가 수준이 높아, 이는 취약계층의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Im et al., 2024). COVID-19 전후인 2020년 이후로 외식비를 포함한 식비로 산출된 엥겔지수 또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Yoon, 2025). 극한 기상현상에 따른 냉·난방비 증가는 가구의 단순한 식재료비를 넘어선 전체 식생활 예산 전반에 부담을 증가시키며, 취약계층은 제한된 지출 내에서 냉·난방비와 식비 중 선택해야 하는 ‘Heat or Eat’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기존의 이분법적 지표만으로는 해당 가구들의 필수 소비 패턴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Jo and Kim, 2020).
이러한 이분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해외 복지 및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는 단순한 빈곤율 측정을 넘어 빈곤의 심각도(severity)를 측정하려는 다차원적 접근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Charlier and Legendre, 2019). 심각도 지표는 빈곤의 정도를 연속된 수치로 나타내, 극빈층과 경계선상 빈곤층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본 연구는 기존 이분법적 식별 방식에서 벗어나 에너지빈곤의 강도를 연속적으로 나타내는 ‘심각도’의 관점에서 새롭게 에너지빈곤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가구의 경제적 제약, 물리적 주거 효율, 그리고 외식비를 포함한 현대적 식생활 제약(수정 엥겔지수)을 종합하여 가구별 빈곤의 깊이를 연속적인 수치로 파악하는 다차원 심각도 지표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기후 적응 지원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고위험군(극빈층)’을 정밀하게 식별하는 지표를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핵심 목적이다. 특히, 심각도 지표를 기준으로 가구를 서열화하고, 에너지빈곤가구 중 상위 10%의 고위험군과 상위 50%의 일반 취약군을 분리 추출하여 기존 복지 지표(TPR, MIS, CEPI)와의 중첩도 차이를 연도별로 실증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제도가 우수한 식별 정확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위태로운 고위험군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음을 확인하고 그 한계를 실증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예산 제약하에서 에너지복지 재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심각도 기반의 차등적 맞춤형 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언하고자 한다.
3. 방법론 및 데이터
3.1. 분석 방법
본 연구의 실증 분석은 도출된 심각도 지표의 구성 타당성을 검증하고 기후 적응 정책에 대한 사각지대 식별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2단계 분석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첫째로, 심각도 수준별 가구 특성 비교를 통한 구성 타당성 검증을 진행하였다. 산출된 심각도 값(epi1, epi2)을 기준으로 전체 가구를 서열화한 뒤, 백분위수를 적용하여 하위 10%, 중위값 이상, 상위 10%(극빈층) 구간으로 집단을 구분하였다. 중위값 기준은 다차원적 생계 제약이 표본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기준선이며, 상위 10% 기준은 Charlier and Legendre (2019)가 개발한 FPI (Fuel Poverty Index)를 10분위 분석하여 최상위 분위에 빈곤층이 집중됨을 실증한 선례와 Alkire and Foster (2011)의 고위험군 집중 분석 방법론을 준용한 것이다. 이후 지표 산식에 포함되지 않은 외생 변수(연령, 성별, 교육 수준, 아파트 거주 여부 등)의 분포를 교차 분석하였다. 심각도 상위 그룹으로 갈수록 전형적인 취약계층의 물리적·사회적 취약성이 뚜렷이 발현되는지 확인하여 지표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둘째로, 기존 에너지복지 지표와의 중첩도 및 포착률을 분석하였다. 새로운 지표의 강건성을 검증하기 위해 기존에 에너지빈곤 문제 관련 연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여러 지표를 이용하여 중첩도를 비교·분석한다.
특히, Kim and Nam (2023)은 3가지의 에너지빈곤 지표들의 교집합을 이용해 여러 지표에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가구들을 매우 높은 정확도를 가지는 에너지빈곤 가구로 정의하였다. 본 연구에서도 해당 연구의 지표 및 방법론을 준용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경상소득 대비 연료비 지출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가구를 나타내는 TPR, 가처분소득에서 필수 주거비와 실제 광열비를 차감한 잔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가구를 나타내는 MIS, 저소득-고지출가구 등 다차원적 컷오프 기준을 고려해 에너지빈곤층을 정의한 CEPI (Composite Energy Poverty Index) 등 3가지 지표를 교집합 (TPR ∩ MIS ∩ CEPI)한 그룹과 에너지빈곤 심각도별 그룹 간 일치율을 기반으로 심각도 지표의 정합성을 평가한다.
본 연구에서는 심각도 상위 50% 및 10% 집단 내에 3개 지표 교집합에 포함된 ‘기존 에너지 빈곤층’이 각각 몇 퍼센트나 포함되어 있는지 연도별로 산출하여 추이를 추적하였다. 이를 통해 넓은 구간(50%)에서는 새로운 지표의 식별 안정성을 증명하고, 고위험군(10%)으로 기준을 좁혔을 때 발생하는 이탈률을 분석함으로써, 기준선 기반 기존 지표들을 활용할 경우 가장 위태로운 빈곤층이 식별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한계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3.2. 에너지빈곤 심각도(severity) 지표 정의
본 연구는 에너지빈곤을 판별하는 기존의 이분법적(binary) 방식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구별 빈곤의 강도를 연속적인 수치로 계량화하는 다차원적 ‘심각도 지표(epi, energy poverty index)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Charlier and Legendre (2019)에서 고안된 연속적 에너지빈곤 지표를 활용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생계 제약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변형 및 확장하였다.
본 연구의 심각도 지표는 세 가지 이론적 구성요소에 기반한다. 첫째, 에너지빈곤은 기본적으로 가구의 지불능력 문제와 연결된다. 동일한 에너지비 지출이 발생하더라도 가구의 처분 가능한 소득 수준에 따라 그 부담의 강도는 달라진다. 따라서 본 연구는 총소득보다 가구가 실제로 소비와 지출에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을 활용한다. 가처분소득은 조세와 사회보험료 등 비자발적 지출을 제외한 이후의 실질적 구매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에너지비 부담과 필수 생계비를 분석하는 데 적합하다. 다만, 자산 보유 여부, 일시적 소득 변동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본 연구는 소득 변수만으로 에너지빈곤을 판별하지 않고 주거·에너지 비용 및 식생활 제약 변수를 함께 고려한다.
둘째, 에너지빈곤은 단순한 소득 부족만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주거환경 및 에너지 효율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동일한 소득 수준의 가구라도 주택의 면적, 주거 유형, 단열 성능, 난방 방식에 따라 필요한 에너지비는 달라진다. 본 연구에서는 가계동향조사 자료에서 직접 관측 가능한 거주면적과 광열비 지출액을 활용하여 면적당 에너지비 부담을 구성하고, 이를 물리적 주거·에너지 비효율성의 대리변수로 사용한다. 이는 에너지빈곤이 가구의 경제적 취약성과 주거환경의 취약성이 결합될 때 심화된다는 기존 논의와 부합한다.
셋째, 에너지빈곤은 에너지비 지출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필수소비의 제약으로 전이된다. 저소득 가구는 동절기 난방비 부담이 증가할 때 총지출을 즉각적으로 확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식비 등 다른 필수 생계비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본 연구는 이러한 ‘Heat or Eat’ 문제를 반영하기 위해 식료품비와 외식비를 포함한 수정 엥겔지수를 심각도 지표의 한 구성요소로 도입한다. 전통적 엥겔지수가 가정 내 식료품비 중심의 식생활 부담을 측정한다면, 수정 엥겔지수는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고령 단독가구 등 현대 가구의 식생활 구조 변화를 반영하여 전체 식생활 예산 부담을 보다 포괄적으로 측정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에너지빈곤 심각도 지표는 소득 결핍, 주거·에너지 비효율성, 식생활 제약이라는 세 차원을 결합한다. 이는 기존 이분법적 지표가 포착하기 어려운 두 가지 집단을 식별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는 에너지비 지출이 높아 명시적으로 빈곤 상태에 놓인 가구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필요 수준만큼 에너지를 소비하지 못해 관측된 광열비 지출은 낮지만, 식생활 부담과 생계압박이 높은 사각지대의 에너지빈곤 가구이다.
Charlier and Legendre (2019)는 기존 이분법적 논의가 빈곤의 심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비판하며, 가구별 에너지빈곤의 심각도를 소득 결핍과 에너지 비효율성의 결합으로 정의한 연속형 지표를 제안하였다. 본 연구는 이를 차용하여 기초 심각도 지표인 epi1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 (1) |
여기서 각 하위지표(X) IPi (Income Poverty)는 특정 빈곤선 대비 해당 가구의 상대적 소득 부족분을 의미하며, ICi (Inefficient Cost)는 단위 면적당 연료비 지출액을 의미하여 물리적 주거 환경의 에너지 비효율성의 대리 변수다.
| (2) |
- P : 중위소득 60%기준과 가구의 균등화된 가처분소득 격차,
- C : 단위 면적당 에너지소비량
여기서 중위소득 60%를 넘는 가구는 IP를 0으로 정의하여, 빈곤층이 아닌 가구는 epi가 0으로 산출된다. epi1은 식비 압박을 고려하기 전, 경제적 제약과 물리적 비효율성만이 결합된 기준지표다. 하위지표는 측정 단위가 상이하여 정규화가 필요하다.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연도별 표본을 기준으로 각 하위 지표에 Min-Max 정규화를 적용하여 [0, 1] 구간으로 변환하였다.
| (3) |
epi 산출 시 이용한 기하평균 집계는 차원 간 대체성을 억제하여 특정 차원의 극단값이 지표 전체를 왜곡하지 않도록 하며, 각 하위 지표의 탄성을 균등하게 유지한다(Charlier and Legendre, 2019; OECD and European Commission, 2008). 각 차원에는 균등한 가중치를 부여하였다.
기후변화 시대에 에너지빈곤층이 직면하는 다차원적 문제를 담아내기 위해, 본 연구는 기초 지표인 epi1에 실질적 생계 압박을 상징하는 ‘수정 엥겔지수(MEC, Modified Engel Coefficient)’를 제3차원으로 결합하여 심각도 지표 epi2를 구성하였다.
| (4) |
MEC 역시 Min-Max 정규화를 적용하여 [0, 1] 구간으로 변환한 후 결합하였다. 전통적 엥겔지수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재료비’만을 필수재 지출로 간주했다면, 본 연구는 이를 확장하여 식료품비에 ‘외식비 및 배달비’를 합산하여 총지출 대비 전체 식비의 비중을 산출하였다.1)
현대 사회의 맞벌이·고령 등 단독가구에게 간편식과 외식 등의 요소도 필수 소비지출로 파악하였다. 극한의 한파로 난방비가 폭등할 때, 이들은 가장 유연한 변동비인 전체 식생활 예산을 강제로 줄이게 된다. 따라서 epi2는 난방을 위해 현대적 필수 식사마저 삭감해야 하는 ‘Heat or Eat’ 딜레마를 반영하는 에너지빈곤 심각도 지표다.
3.3. 분석데이터
본 연구는 기후위기 심화에 따른 가계의 에너지 소비 양상과 다차원적 빈곤의 구조적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 자료를 활용하였다. 가계동향조사의 경우 연 표본 수가 약 8천 가구에 달하여 대표성이 뛰어나며, 소득 및 지출 정보가 항목별로 상세히 구분되어 있어 다차원적 에너지빈곤 심각도를 산출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분기별 자료를 이용하여, 난방비 지출이 연중 최고조에 달하여 기후취약계층의 생계 압박(Heat or Eat)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겨울철’의 취약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1분기 자료만을 추출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2015년과 2019년의 1분기 평균 광열비는 각각 15.4만 원, 12.4만 원으로 다른 분기의 평균 광열비(7.4만 원, 6.4만 원)와 비교했을 때 약 2배 수준으로 높았다. 또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0 에너지총조사에 따르면 동계기간(1 ~ 3월)의 도시가스 사용량이 연간 사용량의 약 50%를 차지한다. 이처럼, 겨울철에 에너지빈곤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1분기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활용하였다(Lee and Song, 2022). 기간은 시계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8년부터 2022년까지로 설정하되, 소득·지출 분리조사 변경으로 2017년, 2018년은 제외하였다(Lee and Song, 2022; Yoon et al., 2019).
에너지빈곤은 단순한 저소득 상태가 아니라, 제한된 예산 안에서 에너지비·주거비·식생활비 등 필수지출이 동시에 경합하는 생계 제약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Jo et al., 2019; Yoon et al., 2019). 이에 가구의 실질 지불능력, 에너지비 부담, 주거 여건, 식생활 제약을 함께 반영할 수 있는 변수들을 핵심 변수로 구성하였다.
가구의 경제적 기반은 가처분소득과 총지출액으로 측정하였다. 총소득은 조세·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성 지출을 제외하지 못해 생활 수준을 과대평가할 수 있는 반면, 가처분소득은 필수소비에 배분 가능한 실질 예산 제약을 더 직접적으로 반영한다(Yoon, 2016). 다만 가처분소득만으로는 자산·부채 등을 포착하기 어려우므로, 에너지비 및 생계비 관련 변수와 결합하여 심각도를 측정하였다. 에너지비 부담은 월평균 광열비 지출액과 거주면적당 광열비 지출액을 함께 활용하였다. 저소득 가구는 비용 부담으로 인해 난방 소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 광열비가 오히려 낮게 관측될 수 있으므로(Jo et al., 2019; Yoon et al., 2019), 단순 지출액과 거주면적당 지출액을 병행하여 주거 규모와 소비 조건의 차이를 통제하였다.
주거비는 에너지비와 함께 가구 예산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필수 고정비로, 주거비 지출 후 잔여 예산이 다른 필수소비 여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핵심 변수에 포함하였다.
식생활 제약은 전통적 엥겔지수와 수정 엥겔지수로 측정하였다. 1인 가구·맞벌이 가구·고령 단독가구의 증가로 외식·간편식·배달 소비가 일상적 식생활 비용의 일부가 된 점을 고려하여, 식료품비에 외식비를 더한 수정 엥겔지수를 함께 구성하였다.
지표의 구성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가구 특성 변수로는 가구주의 연령·성별·교육 수준, 세대 구성, 노인가구 여부, 아파트 거주 여부, 거주면적을 사용하였다. 이들 변수는 심각도 산식에 직접 포함되지 않지만, 선행연구에서 에너지빈곤 가구는 노인·여성가구주 비율과 비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고 교육 수준은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Lee and Song, 2022; Yoon et al., 2019). 따라서 심각도 상위 집단에서 이러한 특성이 일관되게 관찰되는지를 통해 지표의 현실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구원 수에 따른 생활 수준 및 지출 부담의 차이를 통제하기 위해 소득·지출·광열비 등 주요 금액 변수는 모두 균등화하여 사용하였다.
본 연구의 실증 분석에 사용된 전체 표본의 변수별 기초통계량은 Table 1과 같다. 1998년 1분기부터 2022년 1분기까지 전체 표본(N=160,282)의 가구당 월평균 균등화 가처분소득은 약 301만원, 혹한기 광열비 지출액은 약 13만원으로 나타났다. 핵심 생계 제약 지표인 수정 엥겔지수(외식비 포함)의 평균은 29.27%로 나타나, 전통적 엥겔지수(17.46%) 대비 현대 가구의 실질적 식생활 예산 압박이 약 1.6배 이상 크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특히 경제적 변수인 소득 및 주거비에서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이는 가계동향조사 표본 내에 경제적 격차가 깊게 내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에너지빈곤층을 획일적인 식별방식이 아닌, 가구별 고통의 크기를 다차원적으로 서열화하는 본 연구의 ‘심각도(severity)’ 기반 맞춤형 접근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4. 분석 결과
4.1. 심각도 수준별 가구 특성 분석: 지표 간 타당성 및 정밀성 비교
본 연구에서 제안한 다차원 심각도 지표(epi2)가 에너지 취약계층을 얼마나 타당하게 식별하는지 검증하고 기초 지표(epi1) 대비 어떠한 차별적 정밀성을 지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체 기간에 대해 분석하였는데, 전반적으로 그 결과가 유사하게 도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으로 2015년과 2019년에 대한 가구 특성 교차분석 결과를 Table 2와 Table 3에 제시한다.2) 가처분소득은 지표 산식에 내생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의 감소는 지표의 타당성을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 지표의 타당성은 산식에 포함되지 않은 별도의 외생적인 가구 특성 변수들에서 빈곤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나는지를 검토함으로써 확인된다.
Table 2와 Table 3에 나타나듯, 2015년과 2019년 모두 심각도가 높아질수록 선행연구에서 밝힌 에너지빈곤 가구 특성이 강하게 드러났으며, 전체 기간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유사하였다. 특히, epi1과 epi2 모두 다년간 비교·분석한 결과 모두 유사한 결과를 보여,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분석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수정 엥겔지수를 반영하지 않은 epi1에서도 에너지 소비 제약을 받는 그룹의 식생활 압박이 뚜렷하게 관찰되었다. 2019년 기준 에너지 소비 제약이 없는 비제약 가구(G0)의 엥겔지수는 15.1%에 불과했으나, epi1의 빈곤 그룹(G1 ~ G3)에서는 19.6% ~ 23.5% 수준으로 크게 뛰었다. 2015년과 전체 기간에 대해서도 역시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 이는 수정 엥겔지수를 별도로 지표 산식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주거비와 광열비 압박이 가중될수록 취약계층의 필수 식생활 지출 여력이 제약되는 ‘Heat or Eat’ 현상이 데이터 내에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둘째, 이러한 수정 엥겔지수를 결합한 epi2는 epi1이 식별하던 빈곤층의 특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매우 일관되고 안정적인 궤적을 유지하였다. 지표 산식이 복잡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단열 성능과 직결되는 아파트 거주 비율의 급락(2019년 G0 52.8% → G3 7.9%), 노인가구 비율의 폭증(11.0% → 50.9%), 가구주의 낮은 교육 수준 등 핵심적인 취약성 외생 변수들이 epi1과 거의 동일하거나 더욱 선명한 패턴으로 발현되었다.
셋째, 2015년에 epi2 상위 10% 가구는 epi1 상위 10% 가구에 비해 아파트 거주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으나, 에너지지출, 평당 에너지지출, 가처분소득은 오히려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epi2에 수정된 엥겔지수가 포함되면서 상위 10% 그룹에 소득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고 식비 부담은 큰 반면, 제한된 예산 제약하에서 에너지지출을 줄이는 ‘Heat or Eat’ 딜레마에 빠진 가구가 보다 효과적으로 포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epi2가 기존 에너지빈곤층의 구조적 특성을 훼손하거나 잘못된 집단을 식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오히려 기존 체계의 기반 위에 식생활 제약이라는 추가적 기준을 반영함으로써 에너지빈곤 관련 선행연구에서 다루었던 ‘Heat or Eat’를 지표 산식에 반영하였다.
4.2. 기존 에너지복지 지표와의 중첩도 분석: 정확도의 계승과 사각지대 발굴
심각도 지표의 근본적인 강건성을 검증하기 위해, 정확도가 높은 에너지빈곤 가구로 정의되는 에너지빈곤 지표 3개의 교집합(TPR ∩ MIS ∩ CEPI)에 속하는 가구와 심각도 상위 50% 및 10% 그룹 간의 포함 비율(포착률)을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전체 분석 기간에 걸쳐 연도별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본 지표가 에너지빈곤층을 정확히 식별하는 기존 제도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한계를 보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Table 4는 정책적 식별 기준선(50% vs 10%)의 설정에 따른 식별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상위 50%라는 비교적 넓은 스펙트럼에서는 epi1과 epi2 모두 장기간에 걸쳐 기존 지표 대상자들을 절반 이상 안정적으로 포괄하였다. 이는 심각도 지표가 기존의 일반적 에너지빈곤층의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식별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Comparison of inclusion rates of existing welfare indicators (TPR, MIS, CEPI) in high-severity groups(%)
그러나 복지 재정의 최우선 투입 대상인 ‘심각도 상위 10%’의 고위험군으로 기준을 좁혔을 때, 기존 지표와의 일치율은 대부분의 관측 연도에서 90% 내외를 상회하며 정확도가 높은 에너지빈곤층 가구의 대부분이 포함됨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이분법 지표들은 기준선을 통과한 가구를 모두 동일한 빈곤층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가려낼 수 없었다. 반면, 본 연구에서 사용한 에너지빈곤 심각도 지표를 활용하면 기존 제도하에 지원대상이었던 가구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빈곤의 정도가 심각한 상위 10%를 따로 분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전체 관측 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epi1과 epi2 간의 상위 10% 포착률 격차이다. 단순 물리적 효율과 소득만 고려한 epi1에 비해, 외식비 등 현대 취약계층의 실질적 식생활 제약을 결합한 epi2의 기존 지표 일치율은 매년 지속적으로 약 1 ~ 5%p 낮게 관찰되었다(예: 2019년 기준 97.4% vs 93.9%). 이러한 포착률의 격차는 epi2의 식별력이 낮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존 비용 중심 지표가 놓치고 있던 사각지대를 새롭게 발굴해 낸 결과이다. 기존 지표와의 높은 일치율은 지표 간 정합성이 높음을 의미하고, epi1 대비 일부 낮아진 일치율은 기존 지표가 포착하지 못한 별도 고위험군을 포함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Table 5는 2019년 분석 대상 가구를 지표별 심각도 상위 10% 포함 여부에 따라 네 개의 그룹으로 세분화하여 기초통계량을 비교한 결과를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G0은 비제약 가구로 분석의 베이스라인 역할을 한다. G1은 기초 심각도 지표인 epi1 상위 10%에는 해당하지만, 다차원 지표인 epi2 상위 10%에서는 제외된 가구이다. 반면 G2는 epi2 기준 상위 10%에 해당하는 집단이다. 마지막으로 G3는 epi1 상위 10%로는 식별되지 않았으나, epi2 상위 10%로 새롭게 포착된 그룹이다.
분석 결과, epi2를 통해 새롭게 발굴된 G3 그룹에서 빈곤 가구의 구조적 취약성이 더욱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무엇보다 지표 산식에 직접 포함되지 않은 외생적 가구 특성을 살펴보면, G3 그룹은 G1에 비해 노인가구 및 여성가구주 비율이 월등히 높고 대졸 이상 가구주 비율과 아파트 거주 비율은 낮으며 거주 면적 또한 상대적으로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epi2가 단순히 산식에 내재된 식비 지출이 큰 가구를 기계적으로 분류해 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구학적·물리적 취약성이 짙게 중첩된 고위험군을 정확히 타겟팅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외생적 취약성의 격차는 두 집단 간의 ‘Heat or Eat’ 딜레마 양상을 해석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G1은 상대적으로 높은 광열비 지출을 유지하며 'Heat'을 선택한 가구인 반면, 구조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 G3는 극심한 생계 압박으로 인해 광열비 지출을 줄이고 제한된 예산을 식비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던 ‘Eat’ 선택군이다. TPR, MIS, CEPI 등 관측된 지출액 중심의 이분법적 지표들이 G3보다 G1을 더 높은 비율로 포착하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기존 지표들의 결정적 한계를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에너지 소비를 강제로 포기하여 광열비가 낮게 관측된 G3 가구들은 기존 지표에서 비(非)빈곤층으로 탈락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결론적으로 식생활 제약 조건을 결합한 epi2는 표면적인 에너지 지출액 부족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고위험군 또는 극빈층의 실질적 취약성을 성공적으로 식별함으로써, 정책적 타겟팅의 정밀성을 제고하는 지표임을 실증한다.
따라서 Table 4의 이탈률 격차는 지표의 불안정성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기존 비용 중심 지표가 포착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반영한 것이다. 본 연구는 난방과 식생활 사이에서 필수소비를 조정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현대적 극빈층을 epi2를 통해 식별하는 동시에, 가구별 심각도 수준을 기존의 이분법적 빈곤 여부가 아닌 연속적인 수치로 정량화하였다.
5. 결론 및 정책 시사점
본 연구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이 국내 취약계층 가계에 미치는 치명적인 생존 위협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이분법적 기준에 머물러 있던 기존의 에너지빈곤 개념을 가구별로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심각도’의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기존 지표들이 간과했던 실질적인 생계 압박(외식비를 포함한 수정 엥겔지수)을 반영한 epi2심각도 지표를 제안하였다. 본 연구의 결론 및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분법적 식별 방식에서 심각도 서열화 기반의 ‘차등적 맞춤형 복지’로 국가 에너지 복지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이 시급하다. 기존 지표들은 에너지빈곤층의 총규모를 거시적으로 묶어내는 데는 유효했으나, 혹한기에 어떤 가구가 가장 취약한지 등의 우선순위를 서열화할 수 없었다. 본 연구의 epi2 지표는 기존 지표들과 정확도 분석을 진행한 결과, 에너지빈곤층 식별 정확도를 가짐을 확인하였고, 에너지 극빈곤층을 잘 포착하였다. 향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에 따른 기후 적응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 기준을 통과한 모든 가구에 일괄적으로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대신, 개별 가구의 심각도 등을 반영하여 복지 지원금액을 차등한다면 효율적인 예산 지출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정책 현장에서 연속형 점수를 그대로 지원금으로 환산하기보다는, 분위별 등급으로 전환하여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예컨대 epi2 기준 상위 10%를 ‘긴급지원군’, 상위 10 ~ 30%를 ‘중점지원군’, 상위 30 ~ 50%를 ‘일반지원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긴급지원군은 동절기 난방비 부담과 필수 생계비 압박이 동시에 높은 최우선 정책대상으로 설정하고, 중점지원군은 에너지빈곤 위험이 높으나 긴급지원군보다는 상대적으로 심각도가 낮은 가구로 분류한다. 일반지원군은 기존 에너지복지 제도의 기본 지원을 유지하되, 가격 급등기나 한파 발생 시 추가 지원 여부를 검토하는 집단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등급화 방식은 연속형 지표의 정보를 행정적으로 적용 가능한 형태로 단순화하면서도, 기존 이분법적 기준보다 정책대상 내부의 이질성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둘째, 제안된 다차원 지표는 엥겔지수 결합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입증하였다. 산식에 엥겔지수가 포함되지 않은 epi1에서도 빈곤 심화 시 식비 제약이 동반되는 경향이 확인되었으며, 이를 명시화한 epi2 역시 기존의 빈곤층 특성(노인 집중, 비(非)아파트 밀집 등)을 전혀 훼손하지 않고 일관되게 식별하였다. 이는 에너지빈곤 심각도가 높은 가구들은 기존 에너지빈곤 지표들에서 공통적으로 포착하는 에너지빈곤 가구들에 포함됨을 의미하며, 추가적으로 개별 가구들의 에너지빈곤 정도를 정량화하여 나타내기에 기존 제도의 에너지빈곤층 여부를 0과 1로만 판단하는 맹점을 보완하여 에너지복지 재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안정적인 도구임을 의미한다.
즉, 본 연구의 지표는 기존 에너지복지 제도를 대체하는 기준이라기보다,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지원 우선순위를 정교화하는 보조적 정책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TPR, MIS, CEPI는 정책대상 식별의 기초적인 기준으로 여전히 유용하지만, 기준선을 통과한 가구 내부의 심각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반면 epi2는 기존 지표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에너지빈곤층을 상당 부분 포함하면서도, 관측된 에너지지출액이 낮아 기존 기준에서 배제될 수 있는 고위험 가구를 추가적으로 식별한다. 따라서 정책 적용 단계에서는 기존 소득·가구 특성 기준으로 1차 대상자를 선별하고, 그 내부에서 epi2를 활용해 추가지원 순위와 지원 강도를 결정하는 2단계 방식이 현실적이다.
에너지 지원금 지급액 산정 시 심각도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 또한 고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현행 제도에서 가구원 수·계절·에너지원 등에 따라 결정되는 기본지원금에 더하여, 심각도 기반 추가지원 예산을 각 가구의 심각도 등급별 가중치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epi2 상위 10%의 긴급지원군에는 가중치 2.0, 상위 10 ~ 30%의 중점지원군에는 1.5, 상위 30 ~ 50%의 일반지원군에는 1.0을 부여하고, 그 외 가구에는 추가지원을 배정하지 않는다. 개별 가구의 추가지원액은 전체 추가지원 예산에서 해당 가구의 가중치가 차지하는 비율만큼 지급되므로, 총예산을 초과하지 않으면서도 심각도가 높은 가구일수록 더 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한국의 에너지빈곤 문제가 단순히 ‘에너지비를 많이 지출하는 가구’의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예산 내에서 난방과 식생활 사이의 필수소비를 조정해야 하는 생계 압박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특히 epi2가 포착한 일부 고위험 가구는 광열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수정 엥겔지수가 높고, 고령·여성가구주·비아파트 거주 등 취약성이 중첩된 특성을 보였다. 이는 기존 지표상 비(非)에너지빈곤 또는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가구로 보일 수 있는 집단 중에서도 실제로는 충분한 에너지 소비를 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에너지빈곤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복지는 단순히 에너지비 지출 비율을 기준으로 대상을 판별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비 부담이 식생활, 주거, 건강 등 다른 필수 생활영역을 어떻게 압박하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본 연구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지출액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미 있는 다차원 심각도 지표를 도출하였으나, 설문 기반에 의존하여 가구별 에너지 사용량과 필요 에너지 수요를 직접 관측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본 연구는 Charlier and Legendre (2019) 및 OECD and European Commission (2008)에 따라 지표에 균등한 가중치를 부여하였으나, 차등 시나리오에 따른 민감도 분석은 수행하지 못하여, 향후 전문가 델파이조사를 통한 가중치 도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한국전력공사 및 지역 도시가스사 등과 연계하여 가구별 계량된 실제 전기·가스 사용량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실데이터 기반의 융합 분석이 추가로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비용 중심 지표를 넘어선 훨씬 더 정확하고 고도화된 다차원 심각도 지표의 구성요소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동일 예산 하에서 균등지원 방식과 심각도 가중지원 방식의 고위험군 포착률, 평균 지원액, 지원 집중도를 비교하는 정책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면, 본 연구에서 제안한 심각도 기반 에너지복지 체계의 실질적 정책 효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B5A17084749).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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